어머님이 아침에 오셨다.
마침 강의 하나가 미루어져 집에서 빈 시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던 터였다.
어머님은 컵에 인삼가루와 허브가루를 가지고 오셔서 맛을 보라고 하셨다. 탄내가 나는지 안나는지..
독특한 허브 향이 진해서 그런지 아니면 탄내가 원래 없어서 그런지 그런대로 괜찮았다.
어머님 사연인즉 이러하시다.
아는 사람이 사위가 홍삼을 다루는 일을 하는데 어머님 생각이 나서 가져온 홍삼 이라면서 열뿌리를 가져다 주셨단다. 어머님은 거기에 몇가지를 더해서 가루로 만들었는데 아버님이 탄내가 나고 아마도 사위가 못써하는걸 가져다 준거라면서 냄새도 나고 하니 버리라고 하셨나보다. 어머님은 나를 위해 가지고 온 건데, 긜고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그가루 버리면 우리는 끝이요 하셨단다.
아버님은 남들은 다 믿고 잘하면서 왜 내말은 무시하느냐고 역정을 내셨고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역정을 내셔서 큰소리를 주고 받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소연차 집에 들르셨는데 마음이 이만저만 상하신게 아니셨다.
아버님이 연세가 많이 드시고 뇌기능이 조금 저하되었다는 병원 진단도 내려진 터이고 최근에 부쩍 노여움과 서러움을 많이 타시고 잘 우시곤 하셨다. 그렇다고 자연스런 현상을 어찌하지는 못하고 뇌 기능이 소진됨이 천천히 가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는데 아마도 그렇게 생겨난 감정들이 어머님께 집중되어 쏟아지는 것인가 싶다. 어머님께는 뭐라 말씀도 못드리고 편찮으셔서 그런거니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시라고 말씀 드릴 뿐인데 어머님은 그걸 생으로 받아들이고 같이 언성을 높이시며 서로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어머님은 반찬 하나를 해도 금방 싱겁다 짜다 시며 타박을 하신다는 아버님고 어찌 살겠냐고 화를 내시는데,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엄마, 아버지가 아파서 그런건데 그런걸 받아줘야지 왜 그걸 생으로 받아들이노. 그리고 엄마는 기억 안나쟤? 엄마 아플때 아버지한테 어떻게 했는지. 지금도 상황이 비슷한기라. 아부지가 지금 아픈거 아이가.'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뜨끔했다.
우리가 인연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연을 푼다면 지금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시집와서 어머님이 아버님한테 하는 거 보고 놀란 적이 많았다. 좀 심하다 싶어도 아버님은 항상 무던하게 시키는거 다 해주시고 받아주셨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는 내가 이나이에 머슴마냥 그렇게 살게되었냐고 하신다.
옆에서 바라본 사람으로서는 어쩌면 아버님이 어머님 수십년 동안 병수발하신 것을 생각하면 참고 받아주실만도 하신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 역시 타인이라 그런거 아닐지. 지금까지 어머님이 받아오신 것을 아버님께 돌려드린다 생각하시면 이 생에서 얽힌 연도 일부 풀어가는게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나도 누군가에게 풀지 못한 연을 두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여보 내가 만약 정신이 없어서 헛소리하고 짜증내고 폭력적이 되면 그게 다 여보 고마워요 하는소리로 들어줘요 하고 말했더니 남편은 도통 뭔소린지 한다.
부부라는거,
나이가 들어간다는거.
생물학 적인 것보다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이 먼저 사망한다는 거.
내가 나인줄 모르는 순간이 오면 나는 어찌할 것인가.
내가 나인줄 모르는 건 좋은데 전혀 나답지 않은 내가 나로 살아간다면 그건 나인가, 살아있는게 맞는가?
어느 영화가 떠오른다.
노부인이 치매에 걸려 있는데 매일 노신사가 와서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아마도 책이나 일기를 읽어주었던것같다 기억이 가물해서) 매일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가 묻는다. 그 사랑의 주인공이 나인가요?
모든 치매가 이렇게 우아하고 고상하기보다는 험악한 경우가 대부분일것이다.
나는 내가 나를 모를 때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졸다가 몸도 마음도 다 두고 떠나가는 축복을 욕심낸다, 자금.
어머님 아버님의 위기를 바라보며 마음이 아프다. 할 일도 할 말도 없다. 아무리 곁에 있어도 당사자가 아니면 그 심정 그 상황을 어찌 알리요. 그저 어머님의 손을 잡고 매만지고 아버님 팔짱 잠깐 끼고 쓸데없는 수다를 할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