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 쌌다.
변을 봤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고 배설을 했다고 할 수 도 있으며, 쾌변을 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똥을 쌌다고 시원하게 한무더기.
사람들은 변비 증상을 지니고 있는 나에게 야채를 먹으라거나, 식사를 조절하라거나, 유산균을 먹으라거나 하는 여러가지 방책을 알려준다. 아쉽게도 그 어느 것도 나에게 그리 도움은 되지 않았다. 사실 며칠 뱃속에 내보내야할 것들을 담고 다닌다고 그다지 힘들거나 버겁지도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왜 내 보내는 것에 이렇게 인색한가를. 넣고 싶을 때는 목구멍이 차도록 채워 넣으면서 왜 내보내기를 힘들어하는가. 마음은 항상 내보내고 싶어하는데 왜 몸은 그러하기를 주저하는가. 그래서 나에게 묻기로 했다. 왜 내보내기를 주저하는가.
어릴적엔 껌 종이를 모았더랬다. 왜, 무슨 목적으로 그랬는지 기억엔 없지만 껌종이를 모아 차곡차곡 앉은 뱅이 책상 서랍에 담아 두었더랬다. 조금 더 자라서는 캔디그림을 모았더랬다. 캔디랑 앤서니 테리우스 등의 그림들을 애지중지 모았었다. 우표도 잠깐이지만 수집을 했었던 것같다. 그러다 어느날 이 모든 것이 의미없고 헛되다는 생각에 모두 버렸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모으고 싶은 것이 달라졌다. 돈을 모으고 싶었고 좋은 사람을 모으고 싶었고 책을 모아 그것을 머릿속에 담아 축적하고 싶었다. 좋은 경험도 쌓아두고 싶었으며 이렇다할 경력도 쌓아가고 싶었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축적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릴 적 껌종이를 모으고 만화주인공 그림을 모아두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고 쉽게 자주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가지고 있는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도 어렵거니와 만족의 척도를 알 수 조차 없었다.
어느 때는 이만하면 됬어라는 기분이 들다가도 어느 때에는 모든 것이 사라져 텅빈 빈털털이가 되어 마음이 가난하여 한 없이 외롭고 서글프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쌓아두고 수집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같다. 변이라는 이름을 앞에 두고 매일 시시각가 자주 대화를 한다. 나는 왜 보내기에 서투냐고. 너는 왜 내게서 나가기를 거부하느냐고.
이제는 모으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가끔 집 구석구석에 쓰지 않고 아껴두었던 것들을 한 곳에 모은다. 누군가에게서 받은 작은 선물들, 화장품 샘플들, 볼펜이나 작은 소품들, 수첩과 메모지들,, 그 수가 제법 많아 깜짝 놀라곤 한다. 상자에 담아 트렁크에 싣고 다니다 누군가 필요한 기색이 들면 하나씩 건네준다.
사람들도 풀어준다. 감정으로 묶어 둔 사람들을 강물에 흘려 보내듯 보낸다. 가끔은 이런 내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나의 서툼 때문인 것같다.
아이들도 풀어서 내보낸다. 하지만 아이들은 온갖 감정으로 곧잘 붙들려서 끌려온다. 가장 서툰 짓 중에 하나가 엄마노릇인 탓이다. 아이들에 관해서는 중증 변비증상을 체험한다. 단단하게 감정이 엉켜서 편하게 배설되지않고 아이들을 괴롭히기 일쑤다. 참 미안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가끔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드나드는 숨을 고르며 나는 똥에 대해 생각하고 쾌변을 꿈꾼다. 길지 않은 생 동안 모아두고 쌓아두기만을 바라고 소원하던 것을 이제는 배설하고 내보내고 주기에 집중한다.
먹는 즐거움은 크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쳐도 그것은 나를 불편하게 하고 거북하게 하며 죄책감 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배설은 버릴 수록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벼운 희열을 느끼게 한다.
나는 똥을 쌌다. 푸지게 시원하게 쌌다. 변기의 물을 내리면서 잘가라고, 고맙다고 또 보자고 인사를 했다.
몸도 맘도 날아갈 듯 가벼운 날이다. 내 인생도 쾌변으로 가벼워지기를 소원한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 가벼운 맘과 몸으로 시원한 희열로 웃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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