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올랐다.
며칠 비가 스파게티만큼 두껍게 내려 산에 갈 엄두를 못냈다.
내가 가는 길은 비가 많이 오면 돌다리도 잠기는 조그만 계곡을 지나야하니까.
비가 그치면 그 다음날은 꼭 산엘 가도록 한다.
풍부한 물소리가 나를 미치게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아니 고요함 같은 것이 나를 채우고 내 뇌의 어느 한 부분은 몹시 흥분되는 그런 상태가 된다.
사랑하는 님이 나를 어루만질때 막연하게 취하듯 그렇게 그소리에 취하면서도 그 나른함 저 깊은 곳에서는
셀 수 없는 진동이 울리는 것이다.
며칠 구름 속에 살던 산은 오늘 화창한 하늘 아래 푸르렀다.
맘껏 물기를 머금은 나뭇잎은 비만에 걸린듯 보일정도다.
오늘은 만힝 걷기보다는 조용히 숲속 마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내가 안아 주곤 했던 나무를 보았다.
오랜만에 반가워서 안아주려고 하니 벌써 이끼들이 즈그들끼리 좋다고 껴안고 있었다.
알았다. 오늘은 내가 양보하마. 하지만 조만간 비켜라 했다.
구름에 숨어있는 동안 아마도 사람이란 자연의 시끄런 조각들은 나무 근처에 얼씬도 못했을 것이다.
물이 흐르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던 작은 물방울들이 그동안 소원했던 산끼리의 이야기를 나르며 바빴을 것이다.
바위 군데군데 나무 군데군데 그들의 이야기는 녹색의 이끼로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작은 물방울같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문득 산을 오르며 고민하고 가끔은 웃고 가끔은 울고 가끔은 한숨을 던지고 가끔은 수다하던 나도 그들의 이야기속의 주인공이 된적은 있을까? 요즘은 어디에서도 어느 순간에도 내가 주인공 같지가 않다. 이방인도 아니고 그냥 또 다른 나를 내가 보는 것같고.. 나무들이 쌓아놓은 그 수다에 그냥 내가 끼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비가 온 다음날은 산엘 가야한다.
비속에서 그네들이 주고 받은 이야기들의 흔적을 보러가야한다.
그 이끼방울들 사이에서 나의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설령 못찾을 지라도 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
아무 것도 들리지도 발견하지 못할지라도
그냥 그것이 그들과 내가 함께 살고 있다는 위로가 되는 것이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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