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에 출장을 다녀왔다.
전교생이 19명. 선생님 3분.
바다를 돌고 산을 넘어 찾아간 작은 학교.
낭만적일 것같았는데 막상 학교에서 몇시간 있다보니 문득 눈물이 맺힌다.
돌보지않은 학교 담벼락.
비가 온뒤 물이 빠지지않고 고여서 진흙밭이 된 운동장.
가꾸지 않은 환경으로 여기저기 우거진 잡초와 지저분한 나무들.
복도에 있는 책장에는 아이들과 거리가 먼 교수학습자료집같은 색바랜 책들이 꽂혀있고
교실 앞뒤에는 무성의한 환경미화.
맛없는 급식.
망가져서 제대로 사용이 되지않는 느린 컴퓨터들.
19명의 가족같은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와
시골선생님의 순박하고 헌신적인 노력과
미래의 꿈들로 눈들이 반짝거릴거라는
동화같은 바램은
눈에 들어온 풍경으로
가슴 한켠 찡하게 이유도 모르게 눈물짓게 했다.
언제 문닫을지 모르는데 투자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비효율적이잖아요.
도시의 학교에 책한권 사 놓으면 천명의 아이들이 읽지만 여긴 기껏해야 열아홉명이 읽으니 비효율적이지요.
우물안의 개구리가 세상을 보고 튀어나갈 의지가 있으면 나가는 거고
아니면 여기서 평생 농사지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아요.
여기 아이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행복하다고 볼 수 있죠.
선생님 혹시 시골에서 살아보셨어요?
아니요.
전체를 보면 비효율적이지만 한 아이는 인생이잖아요.
이런곳에서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걸알아요. 제가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아이가 우물을 뛰어나가려고 해도 아무 힘이 없으면 안되잖아요.
조금의 힘이라도 길러줘야하지 않을까요?
그런면에서 열악한 곳으로 오신 선생님들이 많이 힘드실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몇시간 있으면서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고
그저 점수만 받으러 와서 시간때울것같은 선생님의 모습을 선입견으로 보고말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지금 돌아보면 억울하고 화나는 경우가 있다.
초등학교시절 전교생이 강가로 신발주머니를 들고 갔다.
어떤 때는 주먹만한 돌을 들을 수 있을만큼 들고 왔고
어떤 때는 하나만 들정도의 큰 돌을 들고 학교로 왔다.
그것이 나중에 학교 분수대를 만들고 연못을 만들때 쓰였다는 것을 알았다.
방학이면 잔디씨를 편지봉투가득이 모아야했다.
어떤때는 코스모스씨를 가득 모아야했다.
땡볕에 우리는 산으로 들로 나가 잔디씨를 훑었고
코스모스씨를 십리길을 걸으며 모아야했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리어카 가득 풀을 베어 퇴비를 싣고 학교마당에 가서 확인을 받아야했다.
그것이 그냥 우리는 숙제였다.
뒹굴뒹굴 더운날에 원두막에서 마루에서 그렇게 뒹굴거리며 책을 보고 싶은 마음을 툭툭 털고
산으로 들로 신작로를 따라 그렇게 숙제를 했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헌신적인 분들이 많았다.
아이들을 데려다 라면을 끓여주시는 선생님도 계시고
월급으로 아이 육성회비를 내주신 분도 계셨고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늦게까지 뛰어놀아준 선생님도 늘 계셨다.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오래도록 간직하고싶은..
아마도 여러곳에서 그런 분들이 아직도 계시겠지.
이왕이면 시골 그런 곳에
효율성이란 이름아래 소외되고 혜택도 못받고 특혜조차도 없는 학교에서
그런 선생님들이 많이 가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어느날 세상을 보고 우물 밖으로 펄쩍 뛰고 싶을때
자신도 모르게 길러진 다리에 힘도 주고
힘이 부치면 뒤에서 선생님이 엉덩이를 밀어주고 계시다는 확신과 감사함으로
풀쩍 뛰어오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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