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환하고 하늘엔 구름이 밭이랑을 이루고 있다.
정말 오랜 만이다. 이렇게 햇살을 보며 아침을 맞이한 것이.
오랜만에 연두빛 여름 원피스에 노란 힐을 신고 출근 길에 나섰다.
그동안 날이 추워서(?) 바지에 셔츠 하나만 걸치고 다녔더랬는데 이제 며칠 남은 기간동안 여름 옷을 열심히 입어줄 예정이다
늘 갖고 다니는 가방을 들어보니 무겁다.
도장이 들어있는 작은 소지품 지갑.
은행통장.
필통.
독서안경.
책 한 권.
책갈피와 포스트잇이 들은 통 하나
손수건 한 장
명함첩
일상의 소지품지갑. 그 지갑 안에 면봉 몇 개. 비상용 대일밴드, 손톱깎기가 달린 만능칼, 루즈 하나, 머리 묶을 고무줄 하나, 반짇고리 하나, 립브러쉬 하나, 손거울 한개, 작은 향수, 휴대용 스킨로션 한개, 또 뭐 있더라? 암튼 잡다한 것들의 집합체이다.
그리고 핸드폰과 다이어리.
이 모든 것들을 매일 들고 다닌다.
물론 차에 싣고 다니니 그리 무겁지만은 않겠지만 어쨌든 매일 내가 함께하는 것들을 오늘 보다가 작은 백을 하나 꺼냈다.
지갑. 필통. 책. 명함첩. 책. 손수건. 핸드폰
이것만 달랑 담아들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을 지나치는데 테이블 아래 어제 조카가 놀다 잊고 갔는지 손바닥 반만한 인형이 보였다.
오늘은 이 녀석을 데리고 출근해야지 하고는 가방 옆 핸드폰 넣는 자리에 이 녀석을 끼워 넣었다.
그게 뭐냐? 엄마는 내 출근 하는 모습을 보시다 인형을 발견하시고는 물으신다.
응 민서껀가 보네. 오늘은 내가 이녀석 데리고 놀라고.
파악 웃는 엄마를 뒤로 하고 그렇게 아주 가볍게 출근을 해버렸다.
가끔 나는 필요할 것 같아 지니고 있는 것이 많다.
그나마 화장을 안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매일 베낭 하나씩 메고 다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자들은 아주 간단하게 지갑 하나를 들거나 아니면 백에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가지고 다닌다.
나도 가끔 남의 가방 속이 궁금해서 구경을 하는 때가 있곤 한데 그야말로 만물상이거나 메이크업 전문가실을 발견하곤 한다.
다른 여성들의 백안에 든 것과 내 것이 좀 다른 분위기이긴 하다.
내 딴에는 비상시를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것을 챙겨 갖고 다닌다고 하는데
최소한의 것이라고 하기엔 어쩌면 염려로움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면봉은 사무실에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귀 안이 지저분한게 싫다. 보이지 않아서 매일 두번은 살짝 닦아 준다. 그런데 깜박하고 그냥 집을 나서는 경우가 있어 그 때를 대비해서 갖고 다닌다.
대일밴드는 아이들이 가끔 여기저기 베어서 나를 찾아오곤 하기때문에 갖고 있다. 사무실에 있다해도 비상용으로 갖고 다닌다. 순수 남을 위한 물품이다.
손톰깎기 만능칼은 남편이 준 것이다. 새끼 손가락보다 작은데 가위도 있고 칼도 있고 손톱깎기도 있어 편리하다. 아이들 손톱이 지저분 하면 불러다 손을 봐주기도 하고 내 손톱 옆에 신경이 거슬르는 것이 있으면 잘라준다.
루즈는 화장도 안하는 내가 유일하게 챙기는 화장품이다. 입술에 색깔 하나 입혀주는 성의는 있어야 할 것같아서다.
머리 묶는 고무줄은 일하다 혹은 날씨 때문에 등등 비상시에 머리를 묶을 때 쓴다. 비상시가 있었나? 물론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하긴 자주라는 단어가 붙으면 그건 비상시가 아니지.
반짇고리. 요즘 누가 바느질 하겠나 싶지만 가끔 튿어지는 옷깃이나 떨어진 단추들이 있다. 내것이건 남의 것이건. 그럴때 도움이 된다. 요즘은 실과 바늘 보기가 쉽지않아 가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땐 여간 즐거운 게 아니다.
작은 향수는 만남이 있을때 살짝 손목에 떨어뜨린다. 화장은 안해도 향수는 사용하는 나로서는 화장품인 셈이다. 대체로 향이 연한 것을 사용하는데 아나수이가 내겐 참 적절한 향수같이 여겨진다. 처음엔 아이들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기분 좋은 향을 주려고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향을 내다는 의미보다는 내 어딘가에 흐릿한 좋은 향이 숨어있다는 의미로 스스로 즐기기 위함이다.
손거울은 제자가 생일에 선물해 준 것이다.
지금은 중학교 2학년생인 우영이가 6학년때 주머니에서 수줍게 쭈뼛하며 꼬깃하게 포장해서 건네준 선물이다. 아마도 디시마트나 이런데서 샀을 거였다. 처음 사용한지 얼마 안되서 거울을 여닫는 연결고리가 달랑거리며 헐거워지고 망가진 아주 저렴한 물건이지만(마데 인 차이나라고 써있었다) 늘 내겐 행복한 선물이라서 갖고 다닌다.
이런 것들이 정말 필요할까?
비상용 이라는 단어들이 이 물건들을 짊어지고 다닐 가치가 있는가?
가끔은 카드 하나 또는 만원짜리 몇 개 주머니에 넣고 핸드폰도 없이 나설때가 있다.
그 때의 홀가분같은거... 그리고 뭔가 낯선 두려움 같은거.... 그러나 해방감 같은거...
그래서 오늘은 모든 것을 집에 두고 나왔다.
근데 필통도 과한 것 같다. 필통 안에는 내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 하나, 형광펜, 포스트잇, 모나미 싸인펜, 볼펜 하나 그리고 usb두개가 있다.
오늘은 그냥 볼펜 하나만 들고 나왔어야 더 좋을 뻔 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준비는 좋지만 가끔 습관적으로 강박적으로 또는 정리하기 귀찮아서 물건들을 갖고 다니는게 아닌가 돌아보아야 겠다.
물론 내 분수에 맞지않게 내 마음에 담고 다니는 것 또한 많지않은가도 살펴보아야겠다.
나의 외형은 나의 내면의 반영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오늘은 가볍게
정말 가볍게
몸도
맘도
그렇게 지내는 하루이고 싶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 않았던 재밌는 것 하나, 조카의 인형 같은 것 하나를 발견하길 바란다.
매미소리가 참으로 크고 우렁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