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감을 데리고 온 큰 딸에게
딸, 네가 두근이를 데리고 왔다가 간 지 일주일이 되었다. 우리는 매일 빠지지않고 너와 두근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 네가 신랑감을 데려온다고 했을 때부터 어떤 사람일까 매일 상상하며 수다했듯이. 그렇게 그날을 이야기하다 보면 너와 두근이가 보고 싶어져. 지금까지 너에게 준 애정만큼 두근이에게 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그동안 두근이에게 주려고 모아 둔 것처럼, 어쩌면 너에게 애정을 줄 때마다 네 짝을 위해 반쪽씩 잘라 모아 둔 것을 이제 주어야 하는 그런 기분이 들어.
그날 아침은 엄마 아빠가 모두 들떠 있었어. 무던한 우리가 예민하게 굴었지. 아빠의 흥분된 모습을 보며 내가 불안했던 것 같은데 아빠는 나에게 왜 자꾸 아빠에게 투덜대느냐며 짜증을 내기도 했지. 아빠의 말에 오히려 ‘자기가 그러면서’ 하고 대꾸하려다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즐겁게 손님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빨리 떠올렸지. 그래서 얼른 내가 ‘미안해’라고 사과를 했단다.
두근이가 들어서는 순간, 엄마 눈에는 소년이 한 명 들어오는 것 같았어. 다 익지 않은 물기 머금은 초록색 사과를 보는 것 같았지. 씩씩하고 밝은 기운이 현관문으로 너희들과 함께 들어오는 것 같아 싱그러웠다. 너도 떨렸을 거고 두근이도 얼마나 떨렸겠니. 그 떨림이 설렘과 싱그러움으로 보이더라. 씩씩한 목소리와 웃음으로 휘어진 눈이 맘에 들더라. 사실 맘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무조건 환영하는 마음이었어. 아빠가 그랬지? 두근이가 마음에 든다고. 그 첫 번째 이유는 내 딸이 좋다고 데리고 왔기 때문이라고.
그날 아빠는 무척 흥분했더라. 아빠가 집에서는 느긋하지만 밖에 나가서 어울릴 때는 약간 흥분한 모습이거든. 무척 신이 나 보이고 은근히 분위기를 책임지려는 것도 있더라고. 많지는 않지만 아빠와 밖에서 모임을 가졌을 때 그런 것을 느끼고 집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거든. 그런데 그런 때보다 더 흥분했더라고. 두근이가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우리 딸의 삶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걸어가는가 하는 생각도 있었을 거야. 한편으로는 항상 너로 인해 처음 경험하는 생애주기의 파도를 타는 중이라 멀미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두근이 한테 화장했느냐고 물었던 거 기억하니? 속으로 얼마나 내가 당황하고 어이가 없던지. 그러면서 얼마나 두근이에 대해 관심을 갖는지 놀랐어. 왜냐면 네 아빠는 엄마가 화장을 하건 안 하건 관심도 없거니와 신경도 안 쓰거든. 두근이의 눈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하던 대사는 또 어떻고. 세상에 그런 대사를, 나한테는 한 번도 안 하던 그런 대사를 두근이 한테 날리다니. 내가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두근이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너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알겠더라. 아빠가 얼마나 두근이한테 온 세포의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알아보고 살펴보고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처음 본 아빠의 마음에 이상하게 가슴이 찡하게 눈물이 핑 돌았어.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아무래도 우리집은 장인일 것 같은 예감이 들더라.
아빠는 매일 이야기 해. 너와 두근이를. 우리는 이상하게도 너희 둘이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왔던 것처럼 이미 행복하게 살았다고 느끼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잔잔한 걱정도 일지만 잘 해나가리라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이 확신이 기도처럼 너희들의 삶에도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이지. 행복하게 사는 법은 간단해. 톨스토이의 안나까레니나의 첫 문장은 그렇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를 갖고 있다고. 비슷한 모습은 모두 행복한 목표아래 자기의 것을 기꺼이 버리고 나누고 포기할 줄도 아는 것이지. 가족 간에 자존심을 앞에 두지 않고 나의 것을 고집하기보다는 상대방의 것을 받아주고 잘못하면 얼른 사과하고 용서하고 인정해주는 것. 엄마 아빠가 완벽하진 못하고 심지어 많이 부족하더라도 그런 것을 최대한 우리의 능력 안에서 발휘하려고 했던 것 같아. 너와 두근이는 우리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니 더 잘 해나가리라 믿는다.
이번 주에는 삼천포에 드라이브 가려고 했어. 그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두근이가 커왔던 곳을 한 번 둘러보고 다음에 이야기를 할 때 공감대를 찾고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아쉽게도 준영이가 여자 친구랑 일광을 가자고 하는 바람에 취소를 했구나. 아빠도 나도 너네가 말 나온 김에 얼른 결혼식하고 재밌게 살기를 바래. 엄마 아빠도 말 나온 후 일주일만에 결혼하고 지금까지 너네가 알다시피 행복하게 잘 살았으니 너네도 그러길 확신하는지도 모르겠다. 기대하는 것인지도. 그리고 결혼을 해야 엄마 아빠가 두근이를 맘껏 볼 자격이 생기는 것 같아 그런 것 같기도 해.
농담 삼아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하지. 두근이 주말에 뭐하나? 바쁘지? 그래도 밥은먹을 거 아닌가. 우리가 대구에 밥 먹으러 갈 건데 밥만 먹고 가. 그리고 밥 먹고 나서 그러는 거지. 다음 주에 부산 안 올래? 부산 다녀간 지 좀 되었는데. 뭐 이런 식이라는 거지. 그러고는 여보 우리 꾹 참읍시다. 우리가 귀찮아서 결혼을 안 하면 안 되니까. 이러면서 막 웃어.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 둘 다 두근이가 많이 궁금하고 보고 싶은 것은 명백한가 보다. 아무튼 우리 마음이 이렇다는 것이지.
요즘 부쩍 아이들이 보고 싶어. 너도 그렇고 소정이도 그렇고. 문득 이제 모두들 자기 둥지를 틀면 아빠와 나만 남겠구나 생각하고 우리 둘 다 심리적으로 독립을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해. 너희들은 독립적으로 키운다고 키웠는데 나이를 먹으니 우리가 어쩌면 아빠는 아닌데 내가 심리적으로 너희들이 더 그리워진다. 원래 그런 거니까 나도 그러려니 하니 너희도 그러려니 하렴.
아무튼 새로운 경험을 앞두고 우리는 매일 설렌다. 둘이 이쁘게 사랑하고 멋지게 성장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2022.1.16. 아침 열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