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이다. 토요일이 다가오고 있다. 설렘이 시간처럼 밀려온다. 밥상에 앉아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든 채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토요일이 다가오고 있어. 왜 이렇게 설레지?”
남편은 ‘노는 날을 이렇게 기다리다니 마누라답지 않네.’ 하면서 계속 밥을 먹는다. 그의 답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밥을 먹는다.
화요일 아침이다. 토요일은 성큼 더 다가오고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면서 뒤를 돌아보는 기분이다. 화요일이 바로 코앞에, 토요일이 조금 뒤에 성큼 와 있는. 밥을 먹으며 다시 남편에게 ‘토요일이 더 가까이 왔어.’ 하니 남편이 쳐다본다. ‘혹시 마누라 갸들 기다리나?’ 하며 웃는다. ‘응. 하루하루 가는 것이 설레고 두근댄다.’고 답한다.
토요일 아침이다. 드디어 토요일이 왔다. 생전 안 닦던 유리창은 사흘 동안 매일 닦았다. 흩어진 책도 단정하게 쌓았다. 남편이 누워있던 소파 위의 흔적도 지웠다. 음식을 준비하고 실내복처럼 보이는 외출복을 입었다. 도착하기로 한 정오가 다가오고 있다. 현관문이 열렸다.
“엄마 아빠 저희 왔어요.”
딸이 왔다. 처음 본 청년이 바로 뒤에 있다. 설렌 가슴은 낯설음과 만나 당황스럽게 두근댄다. 딸의 목소리를 따라 낯선 청년이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습니다.’ 하며 인사를 한다. 그의 웃는 눈이 알파벳 대문자 C 두 개가 나란히 기어가고 있는 것 같다. 들고 온 선물을 건네고, 코트를 벗고, 악수를 하고 소란스러운 말들이 엇갈리며 반갑게 오간다. 모두 사이 소파에 앉았다.
“엄마,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집에 데리고 갈 건데 좀 봐주세요.”
보름 전에 딸의 말을 듣고 남자친구가 오는가보다 했다. 전화 통화하며 친구로 데려 오는 것인지 아니면 선보이는 것인지 물었다. 선보이는 것이 무어냐고 되묻기에 결혼할 생각을 하고 소개하는 것이라 하니 그런 것이라 한다. 둘 다 그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마음이 부산스러워졌다. 온다던 토요일이 몹시도 기다려졌다.
궁금하다. 만나는 날이 너무 멀다. 밤이면 전화를 해서 슬쩍 슬쩍 물었다. 제일 먼저 물었던 것이 착하드나, 웃는 모습이 이쁘더나 였다. 이름이 무엇이고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어디서 컸는지, 부모님은 계신지, 형제간은 어떻게 되는지를 이어 물었다. 딸은 웃으며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더니 만나면 실컷 물어보란다. 더 이상 물어보기가 애매해졌다. 만나는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청년은 씩씩하다. 육사출신의 장교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성격이 그런 것 같다. 대답이 시원시원하고 묻는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을 한다. 남편이 유머와 위트를 섞어 이야기를 하면 알아듣고 웃는다. 유머코드를 이해해서 다행이라 속으로 생각한다. 웃는 모습이 참 귀엽다. 자신감도 있어 보이고 자존감도 높아 보인다. 드디어 맘에 든다. 아니다. 사실 처음 딸애가 맘에 든다고 했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더랬다.
식탁에 모여 앉았다. 내가 기본 음식을 미리 챙겨놓았고 남편이 준비한 메인음식만 내어 놓으면 된다. 남편은 지난밤에 양갈비를 사서 기본양념을 해놓았다가 오븐에 굽고 있다. 남편이 음식을 준비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니 청년이 낯선 풍경인지 잠시 주의를 기울이는 듯하다. 청년은 잘 먹는다. 옛날이야 잘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요즘은 그런 것도 아니니 적당히 먹으라는 남편 말에 청년은 정말 맛있다며 잘 먹는다. 심지어 몇 개까지 더 먹을 수 있는지를 농담처럼 묻는다. 그 배짱도 맘에 든다.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 남편은 청년이 딸에게 했던 말을 우리에게도 전해주기를 바라며 말 사이사이 압박면접을 한다. 청년이 더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밥을 먹다가 문득 밥숟가락을 놓더니 말을 한다.
“따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올 해를 안 넘기려고 합니다.”
남편은 그제야 목청을 높이며 ‘그래 그거지’ 하면서 반긴다. 양갈비 하나를 얼른 더 권한다. 청년이 썩 맘에 들었나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지하에 흐르던 물길이 갑자기 지상으로 분출하듯 어떤 감정이 울컥하더니 눈물로 드러났다. 얼른 고개를 숙여 감정을 추스르고 눈물을 삼켰다. 이것은 또 무슨 마음인가. 어디서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감정인가. 내가 눈시울과 감정을 추스르는 사이 남편은 벌써 부모상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남편의 다리를 툭 치며 ‘뭘 그렇게 서둘러’ 했더니 남편은 말 나왔으면 빨리 하는 게 낫다며 재촉한다.
후식을 먹고 우리의 이야기와 우리를 둘러싼 일가친척의 일까지 가볍게 벼락공부하듯 나누는 동안 세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긴장하고 힘들었겠느냐고, 둘이 데이트하게 보내자며 애들을 일으켜 세웠다. 곧 또 보자는 말을 소란하게 주고받는다. 딸과 청년이 밝은 햇살 속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돌아와 소파에 앉은 시간.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밀려가는 것이라는 것을 처음 깨닫는다. 열 살이든 스무 살이든 나이를 먹고 세월이 가는 것이 바다위의 찰랑대는 물결 같은 것이라면, 결혼은 한 줄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해변으로 달려오는 파도 같다. 그 파도에 밀려 바닷가로 간다. 나의 삶이 밀려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빨리 해변에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다. 싫지는 않다. 자연스러운 편안함이다. 생은 이렇게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며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자리는 다른 자리로 옮김하고 다른 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를 무한 반복하는 것. 그것은 하나의 방향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며 내 뒤에 든든한 존재를 발견한 기분이다.
20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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