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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주부대학

엄마의 갑질

by joyljs 2015. 2. 3.

요즘 갑질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무성하다. 한 항공회사의 임원의 갑질에서 부각되면서 음식졈, 백화점 등 곳곳에서 갑질에 대한 이야기가 경쟁처럼 드러나고 있다. 아마도 갑질을 하는 흔히 말하는 권력 있고, 돈 있고, 백있는 사람들이 아닌 돈도 권력도 그나마 빽도 없는 서민들이 설움과 답답함 그리고 때로는 억울함을 담아 툭툭 던져야만 했던 이야기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사회의 고질병처럼 뿌리깊은 상처를 들추어내는 것도 같다. 우리 의식에 공정하다 공평하다 평등하다 민주적이다 자유적이다 하는 경험을 하고 자란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대학원 수업에서 푸코와 마르크스 등을 공부하면서 평등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런 세상을 살아본 적이 있는지,  정말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를 느끼고 있는가, 나는 자유롭게 평등한 눈으로 세상을 보며 민주주의자로 살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답답함을 느끼고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더랬다. 그리고 그 중심에 권력이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권력은 행사하는 사람도 행사를 당하는 사람도 모두 느낄 수 있는 권력이 있고 의식하지 못하고 권력에 휘둘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헤게모니니 이데올로기니 하는 말은 너무 어렵고 무엇보다 내 아이에게 나는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하고 싶다.

내 셌째 아이가 6학년이던 어느 날 아침었다. 그날 아침에 불고기를 조반상에 올렸다. 일찍 나가야 하는 나는 먼저 식사를 했다. 전날 밤에 먹다 남은 상추 이파리가 열장있어서 불고기를 쌈 할 수 있었다. 몇 잎을 먹다가 막내를 줘야지 하는 생각에 상추잎을 석장 남겨 두었다. 상추를 무척 좋아해서, 밥먹기 위해 상추를 먹는 것이 아니라 상추를 먹기위해 밥을 먹을 정도인 나로서는 아주 큰 마음으로 남겨 둔 것이었다. 나의 식사가 끝나고 족므 후에 아들이 식탁에 앉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원기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던 아들은 식탁에 맥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밥을 푸고 좋아하는 반찬을 아이 앞에 재배치하면서 마음을 식탁에 쏟아 부었다. 아들이 밥숟가락을 들자 나는 말했다.

"엄마가 너를 위해 상추 남겨 놓았거든. 불고기 상추에 싸서 먹어"

물론 나는 기대감과 나의 배려감에 대한 흐뭇함으로 건넨 말이었는데 갑자기 아들이 눈물을 뚝뚝 떨구며 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당황해 하며 아이에게 물었다.

'왜? 무슨일 있어?"

아들은 답했다.

"난 상추 먹기 싫은데 고기를 상추에 싸서 먹으라고 하니까 답답해서 눈물이 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속에서 갑자기 뜨거운 분수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아침부터 사내자슥이 내 성의도 모르고(내가 얼마나 그 상추를 먹고 싶어했는데) 밥상머리에 앉아서 눈물을 짜고... 어릴적 어디선가 듣던 이야기들과 텔레비젼 연속극과 수많은 책에서 읽었던 말들이 나의 언어가 되어 솟수치고 있었다. 그 분수가 목구멍을 넘으려는 순간 나는 '부담'이 뭔지 깨달아졌다.

그까짓 '상추에 싸먹으라'는 말이 뭐 그리 대수이겠냐만서도 살아가면서 때로는 지나는 말 한마디에 목구멍에 무언가 탁 걸리기도 하고 가슴에 바위가 턱 들어 앉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오래 전, 치마바람이 여전히 봄바람 마냥 살랑이며 누군가를 울리기도 하고 억울하게도 하던 오래 전에 학교에서 운영위원장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치마바람을 멈추고 싶은데 흔히 엄마들의 치마바람만 잡아서는 안되고 여러분의 동참이 필요했었다. 그때 교장선생님과 마주 앉아 솔직하게 심중을 전하니 교장선생님께서 그런 건 없어져야 할 것이라며 마음을 같이 해주셨다. 내가 이야기한 것 중 하나는 선생님의 도시락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풍이나 견학, 체육대회 등의 행사에 선생님 도시락이 경쟁처럼 엄마들 사이에 과하게 준비가 되고 그것을 비교분석하는 분위기에 관한 것이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그냥 애들 도시락 쌀 때 선생님꺼 조금 싸면 안되나?'하셨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언제나 학부모들에겐 갑이다. 흔한 말로 자식을 볼모로 잡혀 내 자식을 위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는 을이 학부모인 것이다. 이런 을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갑의 지나듯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도 엄마들이 고민하는 것을 이해 해주기를 바랬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은 그런 교사의 마음과 학부모의 마음부터 일단 조절해가자 하셨고 실천의지로 가까운 시일에 있었던 소풍 때에 전교직원의 도시락을 교장선생님께서 손수 준비하시면서 마음을 추스러주셨다.

교사와 학부모,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교수와 학생, 시어머니와 며느리(여전히 부정할 수 없는) 등 곳곳에 갑과 을은 많다. 알면서 또는 모르면서 그 속에서 오가는 권력들.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권력.

우리집은 거실에 컴퓨터가 있고 텔레비젼과 공용이다. 그래서 누군가 컴퓨터로 작업을 하면 텔레비젼을 양보하기도 하고 또 반대의 경우도 있다. 물론 휴대폰으로 텔레비젼을 시청하거나 노트북으로 컴퓨터 작업을 할 수도 있지만 부득이 큰 화면을 이용해야 할 때가 있다. 어느 토요일 오전, 일찍 일어난 막내가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날 따라 왜 그렇게 그 모습이 눈에 거슬르던지 아들이 게임을 안하거나 나중에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상하게 네 게임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는데 나중에 하면 안되겠니?'라고 요청을 했다. 아이는 '네'하고 대담은 하는데 여전히 손으로는 마우스를 움직여 화면속의 총을 쏘고 있었다. '엄마 얘기 이해했어?'하고 물으니 머리에 썼던 헤드셑까지 벗어가며 '네'하고 대답은 공손히 했으나 다시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 안에서 무언가 훅 올라오더니 한마디 말로 터져 나왔다.

"엄마 텔레비젼 볼거야, 비켜줄래!"

아이는 한숨을 쉬더니 툭탁툭탁 거리며 마우스를 만지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더니 의자에서 팽하고 일어서서 말없이 그러나 쌩하니 방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승리자의 마음도 아닌 구차한 마음이 되어 초라한 행색으로 억지로 텔레비전을 보아야 했다. 그리고 속에서 맴도는 단어 하나, "갑질".

어떤 육십 넘은 연세의 어머니 한 분은 서른이 넘은 아들이 햄버거와 인스턴트 음식 먹으면서 비만이 되자 아들 몰래 콜라에 물을 타다 들켰단다. 아들이 밥 먹으라해도 잘 안 먹고, 잔소리를 해도 잘 안들어서 아들을 위해 한 행동인데 화를 내더라며  매일 다 큰 아들과의  전쟁에 기진맥진하다 하셨다.

다른 한 어머니는 아들이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받은 용돈을 아들 앞으로 저축을 해주었는데 그 아들이 그 돈으로 자기가 갖고 싶어하던 게임기를 사려고 해서 게임기를 이미 갖고 있으니 그 돈을 저축했다가 나중에 유용하게 쓰자며 타일렀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성능이 다르다며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자기 돈으로 사는데 왜 말리냐며 고집을 피웠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너 니가 용돈 받은데 다 니꺼 같지? 그거 엄마가 다 베풀어서 들어 온 거고, 니가 받은 만큼 내가 그 사람들한테 해야하니까 그건 엄마거야. 이제부턴 엄마가 관리할거야 이리줘1"

어찌 웃지않고 참을소냐..

이런 극단의 상황이 아니라도 일상에서 아이에게 밥을 해주고 아이에게 용돈을 주고 아이에게 옷 사 입힌다고 나도 모르게 늘 해대는 갑질. 때로는 교육한다는 이름으로 때로는 아이의 장래를 위한다는 말로 언제 어디서나 쏟아내는 갑질. 내가 아이의 입장까지 도착이 안 되더라도 정말 치사함이 물씬 풍김을 느낀다.

야, 물 좀 떠와라.

이눔 자식, 어디 엄마한테!

뭘 그걸 가지고 그러냐?

치사한 놈, 내가 사주나 봐라.

밥 해 주고, 빨래 해 주고 다 해주는데 그깟 공부하나 제대로 못하냐?

니가 돈 버니? 그냥 해주는 대로 해....

일상에서 아이의 답답함, 억울함, 무능함 이런 것들을 어떻게 다 해소해 줄 수 있을까? 엄마들과의 모임에서 자식키움이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을 듣고 사연을 나누다 보면 대부분이 아이에 대한 갑질이 제대로 효과를 못봤을 때의 섭섭함이나 화남이다. 물론 항상 그런것은 아니다. 자식 앞에 부모는 죄인이고 자식이기는 부모 없듯이 자식을 위해 부모는 마음 조아리고 항상 포기하며 삶을 접어가며 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생색내면 갑질이 된다. 언젠가 남편이 아이와 대화 중에 햇던 말이 생각난다.

"갑질을 해야할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 갑질을 멈추고 이해하는 순간이 네가 그 사람을  얻는 순간이 되는거야"

내가 자식을 내 편으로 둘 수 있는 많은 순간들을 놓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타깝다. 기회란 지나가고 다시 오는 것이다. 가장 빨리 오는 기회부터 내 아이를 내 편이 되도록 입장바꿔 생각하고 그 순간 그 아이의 완벽한 편이 되어 주어야겠다.

나는 내 아이가 세상 속에서 갑이어도 갑질을 하지않고 을이어도 당당하게 을로서 살아가면 좋겠다. 그러기위해서는 가정에서 자유 평등 민주가 실천되어야 할것같은데.. 사실 그게 뭔지 살아보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하고 제대로 배워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그래서 서툰 사랑으로라도 엄마 노릇해보겠다고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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