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룹명/남편

과음하고 번데기 사오던 날

by joyljs 2009. 5. 20.

마누라 내일 내가 소주좀 마시고 올께

그래서 콩나물을 사다 놨다. 얼큰 시원하게 콩나물국이라도 끓일려구.

 

막 잠이 들었나... 삑삑 거리며 남편이 들어왔다. 마누라. 지민아 소정아 준영아 아빠가 번데기 사왔다. 모두 자냐? 모두 자네. 어! 소정인 왜 안자고 있냐? 아빠가 번데기 갖고 왔다 먹을래?

 

비몽사몽 잠이 깨려는데 술이 과했는지 화장실에 가서 음식을 올려내고 있었다. 소정이가 아빠 등 두들겨 줄까? 하고 묻는 소리가 나더니 탁탁탁 소리가 나고 남편의 격한 소리가 들린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는데? 제법 소정이는 잔소리를 친근하게 한다. 아빠 힘들겠다 제법 걱정도 한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부녀간의 일을 조용히 들었다. 딸아이의 말하는 모양새도 이쁘고 탁탁 등두드리는 소리에 아빠의 거친 소리도 정겹다. 딸아이가 등을 두드리며 잔소리도 하고 걱정도 하는소릴 듣는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 나도 어릴적에 아빠와 가끔 저런 풍경을 공유하기도 했는데.. 마치 소정이가 나의 어릴적 한 부분 같다. 소정아 아빠 발 좀 닦아 드려라 내가 한마디 거드니 (내가 소정이 자리에 있는 경우에는 변기통에 앉혀놓고 발을 닦아줄 상황인지라) 소정이가 말했다. 아빠 발닦아줄까? 변기통에 앉아봐. 아니다. 소정아 됬다. 들어가 자라. 아직도 안자고 뭐하노? 소정인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침대에 올라온 남편은 철퍼덕 눕는다. 마누라 내가 여자친구 소개해 줄께. 내 대학 동긴데 우리 동네로 이사왔단다. 소개해줄께. 알았어. 이불도 안덮고 자면 탈이라도날까 싶어서 앉혀놓고 옷을 입혔다. 엎드려 눕더니 이남자 꿈을 꾸는가 금붕어는 그냥 두라며 중얼댄다. 집에 있는 금붕어랑  가재랑 이야기를 하는가? 번데기는 왜 사왔어? 했더니 먹으라고 사왔지 한다. 바닷가에 갔던가? 하나가득 취했는데 컵에 번데기를 담아서 비닐 봉지에 들고 왔다. 저렇게 취했는데 흘리지도 않고 가지고 온 것이 신기하다. 문득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술안드시면 양반이 그런 양반이 없는데 술만 먹었다하면 개다라고 동네 어르신들이 그러셨다. 누구랑 싸우는 것도 아니요 누구에게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었지만 할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동네방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 그래도 우리는 할아버지가 술이 거하게 취하셔서 오시면 다가갔다. 한평생 한복만 입으셨던 할아버지의 조끼 주머니마다 우리에게 줄 과자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릴적 과자도 흔하지 않았던 그때 할아버진 안주로 나온것일 것같은 과자와 주전부리 할 만한 것들을 주머니마다 불룩하니 채워 오셨다.

 

쿨럭대는 남편 덕에 밤을 조각조각 나누어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발가니 내가 한 잔 한 사람같이 되었다. 콩나물 국 끓여 놓으니 아이들이 더 좋아했다. 마누라 내일은 일찍 깨우지 마라.. 그 말씀 받잡고 나는 먼저 세상 속으로 나왔다. 낮에 전화를 해서 살만해? 했더니 죽겄다. 한다.

 

좋은 사람들과 마셨나보네. 그렇게 취한거 보니.

그렇지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마셔서..

그래. 그렇게 가끔 진하게 마시고 와. 살면서 그렇게 취하기 좋은 사람들이 어디 흔한가?

그러길래 어제 좀 과하게 마셨다 아이가. 아~ 근데 몸이 힘들다.

뭐 가끔인데 어때? 뭐 좀 먹어. 일찍 오지?

응.

 

그 남편이 지금 들어오고 있단다. 남은 콩나물국 데워서 먹여야겠다.

'그룹명 > 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요일  (0) 2009.06.11
...  (0) 2009.06.02
공주잠  (0) 2009.05.12
처음 자전거타는 아들  (0) 2009.05.10
간직하고 싶은 공원에서의 밤  (0) 2009.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