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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독서의 이유

독서의 이유6-한글을 깨친 자의 의무

by joyljs 2009. 4. 11.

해운대 경찰서 앞. 땡땡땡 소리에 차를 세운다. 도시 속에서 기차가 지나간다고 철도 건널목에서  땡땡 거리는 소릴 듣는다는 것, 나름대로 낭만적이다. 차를 세워 두고 철길 앞에서 기차가 지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길 건너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로 세로 구석구석까지 간판을 읽다가 문득 눈물이 왈칵 솟았다. 내가 저 글자들을 다 읽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고 감격스러운 일이 아닌가?

 

어릴적 집안이 풍비박살 난 적이 있어 부모님은 고향에 노모와 자식만 두고 타지로 일을 찾아 떠나셨다. 70넘으신 할머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네 남매를 돌보셨고 낮엔 노구를 이끌고 들로 일도 하러 가셨다. 시험철이면 할머니한테 새벽 5시에 깨워달라고 부탁을 하고 잤다. 문득 부탁한 시간보다 일찍 깨어날 때면 어둠 속에서 앉아 계신 할머니를 보곤 했다. 노인은 잠이 없다더니 정말 그런가보다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다. 할머닌 글자를 못읽으셨다. 그래서 새벽에 눈을 뜨시면 시계를 보실 줄 몰라 시계 종소리를 세고 계신거였다. 꼼짝도 않고 세 시 종소리에 눈을 뜨시고는 손가락 세개를 꼽고 앉아계시고 4시 종소리에 손가락 네개를 꼽고 한시간을 기다리신거였다. 그리고 시계가 다섯번 종을 치면 그제야 꼽아 두었던 손가락을 펴시고 나를 깨우셨던 거다. 그 때는 그걸 몰랐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 연세80즈음에야 할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앉아 계셨던 이유를 알았다. 나는 엉엉 울었다. 손녀를 깨우기 위해 새벽부터 앉아서  쥐가 나도록 손가락을 꼽고 종소리를 기다리며 새벽을 앉아 계신 할머니의 마음과 정성에 고맙고 미안해서 많이 울었다. 용돈 달라면 한참 돈을 쳐다보시는  굼뜬 행동에 짜증을 내기도 했었는데 그 것 또한  할머니가 돈의 색깔과 모양을 구분하시려고 그러는 줄 나중에 안 것이다. 할머닌 왜 그렇게 돈을 늦게 주시냐며 짜증을 내던 손녀딸에게 큰소리 한 번 안내시고 순진한 웃음을 웃으셨던 할머니. 마이애미에서 살 때 할머니는 하얀 한복을 입으시고 머리를 예쁘게 쪽지고 꿈속에서  나를 보러 오셨었다. 그 날이 할머니께서 세상을 놓으시고 돌아가신 날이 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꿈 속에서의 예쁜 할머니의 모습과 새벽 어둠 속에  앉아 계시던 모습, 지페을 펴고 한참 바라 보시던 모습의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가슴을 적신다.

 

엄마도 산골 처녀로 살아서 학교를 제대로 못나오셨다. 엄마가 아빠에게서 가장 부러운 것이 아빠의 학교동창모임이라고 하셨다. 엄마는 우리와 함께 한글쓰기를 익히셨다. 대학 때 엄만 마치 초등학생처럼 힘을 주고 또박또박 글씨를 써서 편지를 보내주셨다. 훈민정음 원본같은 엄마의 편지를 얼마나 천천히 오랜동안 읽었던가! 엄마는 당신의 서툰 글씨체와 어눌한 글솜씨를 얼마나 부끄러워 하셨을까? 그래도 집 떠난 딸이 걱정이 되어 또박또박 힘주어 쓰셨을 것이었다. 엄마는 농사일이 끝난 저녁에 수줍게 초등학생용 국어 공책을 꺼내어 일기를 쓰곤 하셨다. 숙아, 내가 일기를 이제 제법 잘 쓴다 시며 자랑하시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글을 잘 읽으며 심지어 영어까지 읽어내면서 무엇하나 꾸준하게 이루어내지 못하는 내 모습이 무척 죄송스러웠다.

 

 

1443년(세종 25년) 완성되어 1446년 음력 9월 상순(양력 10월 상순)에 반포된 훈민정음은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총 28자로 이루어졌다. 현재는 24자만 쓰이는  훈민정음의 말뜻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고 현재는 한글이라 한다. 세종대왕이 창호지 문을 바라보다 힌트를 얻어서 만들었다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한글을 만드는과정이 그리 어렵게 여겨지지도 않았고 그만큼 소중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아마도 단순한 어린아이이의 생각에 세종대왕은 참 똑똑한 사람이구나만 했을것이다. 나이를 먹고 무언가 철이 들어가면서 한글을 만드는 과정이 단순한 문의 살을 보고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고 소리를 내는 혀와 구강구조와의 관계에서 모양을 본따 만들었다는 것에 신기함을 넘어 감탄을 했다. 그러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그당시 중국과의 관계와 정치적 상황 속에서 한글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비장함을 느꼈다. 2006년 이정명소설 뿌리깊은 나무를 읽으며 내 부족한 상상력은 위로를 받고 한글탄생의 어려움을 재발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초정리 편지를 읽으며 한글이 주는 위대함을 다시 발견했다. 그냥 어느날 아침, 햇살이 비친 문을 보고 한글을 후다닥 만들었다는 생각이 다음과 같은 훈민정음 서문  "나랏말미 中國에 달아 文字와로 서르 디 아니 이런 젼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배 이셔도 내 제 뜻을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 내 이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여듧 字를 노니 사마다 니겨 날로 메 便安킈 고져 미니라"라는 글을 읽고 가슴 한켠이 저며와 눈물을 흘리게 되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내가 한글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그냥 단순하고 당연한 일이 아니다. 백성을 사랑한 위대한 정치가의 사상이 담겼고 시대를 뛰어넘는 모험이 있었으며 수많은 고난과 애환이 맺혀있는 가슴 벅차게 껴안고 사랑할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가 한글을 읽는 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린 이유다. 시월 9일 한글날은 큰 빨간색으로 달력에 표시되어 온 국민이 쉬면서 그 의미와 감사를 한 번 더 되새겨야 한다고 늘 주장하는 이유다. 

 

이렇게 고맙고 이렇게 축복 받은 글 읽기를 왜 그냥 사소로운 일에만 사용하려는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적극적으로 감사하며 적극적으로 행동할 일이다. 그것이 독서를 해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