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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사람

할머니

by joyljs 2007. 3. 14.

저게 바다구나. 넓기도 하다...

안개비가 회색으로 내리는 동해 모래 들판에서 할머니는 쪼그리고 앉으셨다.

우산을 동그랗게 쓰고 그림같이 잔잔한 바다를 역시 움직임없는 그림같이 할머닌 아주 오랜동안 바다를  바라보고 계셨다.

할머니 바다가 처음이야?

응 응 이게 바다구나.

순간 가슴 한켠에서 쿵 소리가 났다.

왜 그렇게 무언가 쿵 내려앉듯이 내려치듯이 아프듯이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그무엇처럼 가슴에 울렸는지...

팔십이 넘어 처음 바라본 바다를 보고 할머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무말도 없이 그냥 바라다 본 그 바다를 보고 할머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셨을까?

떠오른 단어가 있으셨을까?

떠오른 사람이 있으셨을까?

비가 내리는 조용한 바다 모래 들판에 묵화처럼 앉아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은 선명하다.

 

시골 살림이 그렇다. 눈뜨면 해지고 지칠때까지 일감이 손에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봄이면 봄대로 바쁘고 농한기라해도 겨울이면 겨울대로 바쁘다.

그래도 가끔 버스 한대 대절해서 효도관광이라고 고향을 벗어나곤 한다.

새벽부터 할머니는 머리 곱게 빗고 새로 산 옷을 걸치고 주름을 옆으로 펼치고는 조심스럽게 길을 나서신다. 에구 늙어서 무슨 귀경이야 죽으면 그만일걸.. 인사말처럼 외양간을 지나며 말씀을 남기신다. 말이야 그렇지만 마음은 벌써 버스에 오르느라 뒷말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희미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렇게 몇번 할머닌 여행을 다녀오셨다.

그런데 바다는 한번도 다녀오지 못하셨나보다.

연세 있으신 노인들이라 온천으로만 대충 다녀오셨을까...

할머닌 우리나라가 삼면이 바다였다는 것을 알긴 하셨을까?

바닥 육지라면 이란 노래를 정말 라면으로 알고 계셨던건 아니었을까?

 

미국에 있을때 어느날 밤 꿈에 할머니가 오셨다.

짧은 커트머리는 예전의 예쁜 쪽머리로 올리시고 하얗고 예쁜 한복을 곱게 입으시고 얼굴은 환하고 몸은 가볍게 보기만 해도 미소가 나는 예쁜 모습으로 오셨다.

할머니 나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어? 어떻게 왔어? 바다는 잘 건넜어?

나의 이런 물음에 손에 느껴지듯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한복자락 가볍게 날리시며 돌아가셨다.

나주에 알았다. 그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가끔 바다를 보다 할머니를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평생 잘한 일 중 하나는  가족여행을 계획해서 동해로 갔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할머니와 우산속에서 바다를 봤다는 것이라고...  

 

떠난 사람에 대한 그 어떤 기억도 남은 자에겐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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