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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주부대학

다른 이가 내게로 와서 아이를 가르치게 하지 말라

by joyljs 2015. 2. 10.

미용실에 갔다. 도대체 숫사자의 갈기도 아니고 어찌 흰머리카락이 얼굴을 애워싸고 하얗게 샜는지. 도대체 내 머리카락 자라는 속도는 왜 그렇게빠르게 느껴지는지.  머리카락은 한 달에 1~2샌티미터정도 자란다는데 내 머리카락은 그것보다 두 배는 더 빨리 자라는 것 같다. 그래서 머리를 염색하고 이십여일 좀 지나면 얼굴 주위에 하얀 테가 그려져서 여간 난감한게 아니다. 나이가 많아서 아예 자연그대로 두면 나름 리처드 기어같은 회색빛 머리카락의 매력이 있으려나 시도해 보련만 아직은 젊은지라 머리카락 색에 맞춰 염색을 한다. 남 생각 안하고 산다는 것이 참 머리카락부터 시작해서 여간 어려운게 아닌거 같다. 정말 자신답게 사는 사람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미용실 예지 엄마가 고민이 많은가 보다. 예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는데 아이의 공부를 어찌 도와야하는 지, 학원을 어디를 어떻게 보내야 할 지 고민이 태산이다. 좀 전의 동네 친구와의 전화 내용을 이야기 해주는 데 지금 학원을 안 다니면 중학교에 가서 뒤처져 아이가 힘들다며 빨리 학원을 같이 보내자고 한다나..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데 사실 말한들 무슨 소용인가, 결국 엄마의 가치관대로 움직이는 거 아니겠는가. 하긴 엄마들에게 가치관이라는게 있는 지 조차 모르겠다. 이 엄마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런거 같고 저 엄마가 저렇게 이야기하면 저런거 같고 마냥 햇갈리다 가장 힘있게 당기는 엄마의 힘에 이끌려 아이를 그 엄마가 원하는 학원에 보내는 경우도 다반사인데 말이다.

엄마는 자식을 정말 소신있고 자신있고 후회없이 잘, 훌륭하게, 정말 자알 키우고 싶다. 그래서 온갖 자녀교육 관련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책을 읽고 텔레비전 시청도 열심히 한다.  태교부터 영아기를 거쳐 유아기를 지나고  유치원 그리고 학교생활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엄마는 최고의 것을 주고 최고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정말 최선을 다한다. 눈물겹도록. 하지만 지나면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허망해하던가. 결국 수능을 겪지 않고 자식을 논하지 말라는 말로 뒤를 돌아보며 자축인지 자책인지를 하면서 아이를 품에서 떠나 보낸다.

나도 첫아이를 임신하면서 아이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누구나 임신을 하면 갖고 있는 임신출산대백과 사전 같은 책을 나도 한 권 가지고 있었다. 아이의 한 주 한 주 성장에 따른 그림을 보면서 우리 아기는 지금 어떤 모양일까 생각하며 신기해 했다. 인간의 창조론과 진화론 어느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책에서 보는 아이의 변화는 신기하고 신비롭기도 하며 지구상의 생물의 변화를 보는 듯 했다. 보통 지구의 나이를 46억년정도라고 하던데 지구가 식고 하나의 생명체가 태어나 진화를 거쳐 현재의 생태계까지 왔다고 한다면 내 뱃속에서의 아기의 성장 변화는 단순히 내가 아이를 품고 있는 열달동안의 기간의 의미를 넘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자궁 안에서는 천 년, 또는 만 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기는 이렇게 빨리 성장 변화하고 있는데 과연 나는 그런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엄마로서 성장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과 반성이 들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그 때 준비를 하면 이미 늦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성장과 관련된 책보다는 엄마로서 진화하기 위한 공부를 위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냥 좋은 엄마가되기 위한 나름의 길을 떠난 것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무언가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행복한 아이와 관련된, 예를 들면 당시에 크게 국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써머힐스쿨에 관련한 책이거나 딥스같은 책들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어떻게 키울것인가가 아닌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내가 어떤 마음과 인생관을 가져야하는지, 막연하게나마 정리하고 수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 그때 내게 중요하게 와닿았던 개념은 절제와 믿음이었던 거같다.

미음은 라틴어로 CREDOS라고 하는데 그건 심장을 꺼내준다는 의미란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내 심장을 내준다는  것인데 그건 정말 자식을 키우면서 몸소 체험하게 될 말이었다. 세상의 온갖 교육관련 상업적 홍보와 학문적 정보와 경험자들의 정보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내가 무언가를 제대로 선택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선택 보다는 절제가 더 중요한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짐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이 세상에 그 많은 사람 중에 내게로 와 인연이 된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단지 나는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그리고 내 아이는 나의 무모하고 어리석은 선택과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엄마의 위치는 항상 아이보다 한 발 뒤에서 바라보며 걸어가는 존재이어야 한다고 나의 위치를 얼추 어림잡아 정하기도 했다. 신이 아이를 위해 선물을 하나 준다면 무얼 달라할까 하는 자문자답을 통해 건강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로 했으며 두번째 소원으로는 좋은 만남을 갖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리고 정말 건강하게 잘 돌보고 최초의 인간관계인 나와 좋은 만남이 되도록 하겠다고 다집했었다.

그렇게 아이는 세상에 나왔고 나는 아이와의 관계를 통해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뱃속에 품고 있었을 때 내가 바라고 다짐하고 결심했던 모든 것들은 기억 저 편으로 넘어 가버린듯 했다. 나는 아이에게 집착했고 화냈고 욕심을 부렸고 고집도 부렸으며 등짝을 때리기도 했다. 그리고 자주 주변의 이야기로 내 아이를 평가하며 우울해하기도 하고 으쓱해 하기도 했으며 미래조차 암울하게 여기기도 했다. 나는 나를 잊어버리고 아이를 잊어버리고 자주 길을 잃고 헤매곤 했다. 그리고 그런줄 모르고 잘 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합리화하고 최선을 다한다며 자족했다.

나는 내가 바라는 엄마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는 내 부모가 있었고 내가 읽은 책이 있었고 내가 들은 세상의 편견이 있었으며 세상의 불안과 상업적 이용의 미끼가 나를 조정을 했다. 나는 나답지않았다. 그런 역사와 세상에 적당하게 물든 것이 나라면 정말 나다운 것이겠지만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내가 아니라 누군가 색칠하고 만든 나였던 것이었다. 나는 내가 바라는 '나다운 엄마'이고 싶었다.

늘 이것이 내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 나다운 엄마로서의 선택인지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 다른 사람이 보면 이해가안가고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불안해보이는 것도 있을 것이었다. 그래도 정말 나다운 엄마이고 싶었다. 아이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그 과정에서 정말 심장을 도려내는 믿음이라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고 엉엉 울어도 보고 순간 절망의 언덕도 넘어야했다  그럴때마다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이의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가 가장 나다운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던 순간 덕분이 아닌가 싶다.

항상 나는 어떤 엄마인가, 나 답게 살고 있는가, 아이의 행복을 우선하는가, 혹시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즉 조상이나 옆집 사람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내 안에 들어와서 사는 것은 아닌가 돌아본다. 내 아이의 엄마는 나다. 우리는 이런 인연으로 만났다. 내가 나 다울 때 우리의 인연에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가장 나 다운 엄마는 아이가 자신의 길을 엄마 눈치도 안보고 맘껏 걸어가고 나는 한걸음 뒤에서 걸어가는아이의 뒷보습을 보며 응원하는 것이다. 언젠가 조금 후회할 지도 모르고 가끔은 이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하며 또 가끔은 아이에게 미안해 한다. 그래도 그 순간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으로 위로하며 아이를 믿는 것으로 상쇄하려고 한다. 얘야 너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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