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낯선 전화번호가 내 핸드폰에 떴다.
누구지?
여보세요?
재숙이니? 나 현숙이야.
현숙이? 어떤 현숙이?
왜 육학년때 같은 반 했잖아. 머리 곱슬거리고..
아 기억난다.. 어머어머 너 얼마만이니? 이십년도 더 됬네.. 잘 지냈니?
응. 근데 너 그 여자 어디사는지 아니?
만나면 애들 얘기 살아온 이야기 남편이야기 등등을 하는데 현숙이는 느닷없이 그여자에 대해 물었다.
그 여자가 누구지?
왜 우리 육학년때 담임.
전명자 선생님?
선생님은 무슨.. 그여자가 무슨 선생이냐? 지금 어디 사는지 알아?
아니 몰라. 왜?
그때 우리한테 그렇게 하고 지금 어떻게 사는지 한번 보고 싶어서. 난 지금도 그여자 생각하면 치가 떨려.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하긴 나도 좋은 기억은 없다.
육년동안 자식이 초등학교에 다녀도 학교에 한번 다녀오기가 힘든 농부들이 모여사는 곳.
몸빼바지에 늘 흙묻은 고무신을 신고 머리에는 수건을 두르고 살던 우리 어머니들.
그런 곳에 순이 엄마와 원이 엄마는 레이스가 달린 긴 치마를 입고 화장을하고 매일-내 기억으로-
학교에 왔다. 손에는 예쁜 보자기로 싼 커피가 담긴 병이 있었고 가끔 맛있는 간식도 있었던것같았다.
오학년 우리반 아이들과 담임선생님은 그대로 육학년 같은 반이 되었다.
육학년이 되어 투표도 없이 순이와 원이는 반장 부반장을 나란히 했다.
귀염이와 재숙이가 반장 부반장을 해야한다는 아이들의 웅성거림에 마침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반장 부반장은 공부로만 결정되는게 아니라고.. 그때 나의 심정을 난 아직도 모르겠다.
슬픈것도 같고 화가 난것도 같고 무기력했던것도 같고..
나는 환경담당을 했다. 선생님은 우리반 위인이 신사임당이니 초상화를 사오라고 했다.
시골에 초상화가 없었다. 차를 타고 멀리 가도 신사임당 초상화를 구할수가 없었다.
겨우 초상화를 하나 구했는데 연필로 스케치가 된 신사임당 초상화였다. 한복을입고 머리를 올린...
겨우 없는 살림에 제법 큰돈을 들여 장만한 초상화를 자랑스럽게 들고 학교에 갔다.
비싸기도 하고 읍내에서는 못구하는거라 그 노력을 선생님이 알아줄것같앗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 이런걸 구해왔냐. 너무 촌스럽다. 칼라는 없더냐. 너무 싸구려같다며 이걸 어떻게 거냐고 면박을 주셨다. 다시 다녀봤지만 신사임당 초상화는 그것밖에 없어서 결국 교실 앞 칠판 오른쪽 옆에 걸렸다.
육학년 한해동안 신사임당을 마주보며 얼마나 서운하고 슬펐던가. 엄마한테는 얼마나 미안했던가.
몇해전에 신사임당 초상화에 대한 글을 읽은적이있었다.
초상화가 단 두개밖에 없는데 선생님은 그것도 모르고 칼라로 된 예쁜 것을 안사왓다며 면박을 하다니 정말 억울하네. 라며 나도 모르게 그 기사를 선생님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현숙이는 더 했단다.
엄마를 오시라고 자꾸 그래서 안모시고 왔더니 툭하면 꼬집고 무시하는 말을 자주해대고 쥐어박고..
학교다니기가 너무 싫었다는 현숙이.
자기는 단 한번도 선생님이라고 그 여잘 불러보질 않았단다.
그런 사람이 지금도 잘먹고 잘사는지 꼭 확인하고 싶단다.
아이를 키우고 학부모가 된 현숙이는 혹시 자기 아이가 그런 대접을 받을까 신경이 쓰이고
본인은 순이와 원이 아줌마 같은 사람이 될까봐 학교도 안간단다.
잊어버려. 세월이 그렇게 갔는데. 너만 속상하지. 난 기억도 잘 안나는데...
그걸 어떻게 잊어 매일 울고 다녔는데. 애들이 없을땐 얼마나 더 심했는지 아니? 난 그여자가 죽는게 소원이었다.
이십년이 지나 우연히 나눈 전화통화는 아이 안부도 모르고 그저 옛날에 상처를 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로 긑났다.
육학년이면 열세살이다.
열세살의 기억이 마흔이 지난 아줌마의 가슴을 상처내고 있는것이다.
맘이 아팠다. 하긴 나처럼 눈치없는 아이도 아직도 쓸쓸한 기억이 많은데 예민하고 조용했던 현숙이는 내놓고 당했다니 오죽할까.
잊어버리라고 잊어버리는게 니가 말한 복수보다 더 낫다고 말했지만 정말일까싶다.
잊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수 밖에 없는 사연이, 가령 암에 걸린 가족이 있어 돈이 필요했거나 하는 그런 사연이 있어 그랬을지도 모르니 차라리 소설을 써서 용서하라고.
그렇게라도 네가 그 선생님으로부터 이제는 벗어나라고 조르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 통화후 가끔 나도 그 선생님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작년여름에 어릴적에 상처를 준 담임선생님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공포영화가 있었단다.
결국 선생님에 대한 원망을 쏟아 붓다 제자들이 문방구용품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나..
그영화 예고편을 보면서 나도 그 선생님을 생각했었다.
만약 만날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만나고 싶어질까? 난 그 자리에 가고 싶지않다.
이 책은 현숙이와 나의 기억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다.
어린 선생님과 아이들, 유독 선생님을 사랑한 제자의 이야기다.
바람부는 배경에서도 애틋함이 묻어났다.
모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아이들이 선생님은 사랑을 주는 태양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용서와 이해를 해야하는 기억이 아니라 감사와 가슴 뜨겁게 울컥 솟아나는 정으로 기억 되는 사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현숙이에게 평화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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